가을을 탄다는 것 — 해가 짧아질 때 마음에 일어나는 일
정선이 소장 · 2026. 10. 22. · 조회 5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해지면 까닭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습니다. 퇴근길 하늘이 벌써 어두워진 것을 보고 괜히 쓸쓸해지고, 오래전 일이나 멀어진 사람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흔히 '가을을 탄다'고 말합니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마음이 약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몸과 마음이 함께 그 변화를 받아 내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몸이 먼저 계절을 느낍니다
가을에는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집니다. 낮에 받는 햇빛의 양이 줄면 잠들고 깨는 몸의 리듬이 흔들릴 수 있고, 기분과 의욕에 관여하는 몸속 물질의 균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루를 보내도 평소보다 더 피곤하고, 잠이 늘거나 줄고, 입맛이 달라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가 가을과 겨울에 반복해서 나타났다가 봄이 오면 나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정도가 깊고 오래가면 '계절성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살펴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계절과 몸의 리듬이 만나는 자리에서 생기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마음은 한 해의 끝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가을은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달력의 남은 장수가 줄어들면 '올해는 뭘 했나', '이루지 못한 것들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나뭇잎이 지는 모습은 지나간 시간과 떠나보낸 것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평소 눌러 두었던 감정이 올라오기 쉽습니다. 이별, 상실,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혼자라는 느낌 같은 것들입니다. 가을의 쓸쓸함이 유난히 깊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계절 탓만이 아니라 그동안 미뤄 둔 마음이 말을 걸어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이어진다면
- 해가 짧아진 뒤로 아침에 일어나기가 눈에 띄게 힘들어졌다
- 평소 좋아하던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 잠이 너무 많아지거나, 반대로 잠들기 어렵다
-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이 유난히 당기고 몸이 무겁다
-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변화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2주 넘게 이어지고, 일이나 학업, 사람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누군가와 나누어 볼 때입니다.
이번 가을을 지나가는 작은 방법들
첫째, 낮의 햇빛을 챙겨 보세요. 가능하면 오전에 20~30분 정도 밖을 걷는 것이 좋습니다. 흐린 날도 실내보다는 바깥의 빛이 훨씬 밝습니다. 점심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이 됩니다.
둘째,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되도록 일정하게 지켜 보세요. 기분이 가라앉을수록 쉬는 날 늦잠으로 리듬이 더 무너지기 쉽습니다. 완벽하게 지키려 하기보다 '일어나는 시간만이라도'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셋째, 몸을 조금 움직여 주세요. 땀을 흘리는 운동이 아니어도 됩니다. 집 앞을 한 바퀴 걷고, 스트레칭을 하고, 계단을 이용하는 정도의 움직임이 마음의 무게를 덜어 주기도 합니다.
넷째, 한 해를 돌아볼 때 '못 한 것'만 세지 말고 '해낸 것'도 함께 적어 보세요. 올해 버텨 낸 일, 고마웠던 사람, 스스로 대견했던 순간 세 가지만 떠올려도 마음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가을이 수확의 계절인 것처럼, 우리의 한 해에도 거둬들일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섯째, 사람과의 연결을 작게라도 이어 가세요. 긴 만남이 부담스럽다면 안부 문자 한 통, 짧은 통화, 따뜻한 차 한 잔도 좋습니다. 쓸쓸할 때 혼자 있으려는 마음이 커지지만, 그럴수록 아주 작은 연결이 마음을 붙들어 줍니다.
이럴 때는 도움을 청해 주세요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가 2주 넘게 이어지거나, 잠·식욕·의욕이 크게 흐트러져 일상이 어려워졌다면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가을을 탄다고 모두 상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지칩니다.
만약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체하지 말고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24시간)나 가까운 응급실, 주변의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바로 알려 주세요. 당신은 그 순간에 혼자일 필요가 없습니다.
가을은 지나갑니다
계절이 바뀌듯, 지금의 쓸쓸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느냐에 따라, 이 가을이 그저 견딘 계절이 될 수도, 나를 돌아본 계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유난히 시린 가을이라면, 공감터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무겁게 하는지, 천천히 같이 헤아려 보겠습니다.
― 공감터 상담심리연구소 정선이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