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 대신 눈물이 먼저 나오는 아이 — 사과보다 먼저 필요한 것
정선이 소장 · 2026. 10. 13. · 조회 9

놀이터에서 친구와 부딪혔습니다. 먼저 밀친 건 분명 우리 아이였는데, 아이는 친구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립니다.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 한마디에 울음은 더 커지고, 끝내 사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부모의 마음에는 민망함과 걱정, 그리고 '왜 우리 애만 이럴까' 하는 억울함이 함께 남습니다.
초등 저학년, 특히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을 두고 '고집이 세다', '버릇이 없다'고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눈물은 대개 반항이 아닙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이 터져 나온 것에 가깝습니다.
사과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견디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른에게 사과는 '내가 한 행동'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민한 아이에게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내가 나쁜 아이'라고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행동과 나 자신이 아직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가 잘못했잖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행동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비난으로 들립니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아이는 울음으로 버티거나, "쟤가 먼저 그랬어"라며 바깥으로 탓을 돌립니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나름의 방어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어진다면
- 작은 실수에도 크게 울거나 화를 내고, 진정하는 데 오래 걸린다
- 잘못을 지적받으면 "아니야", "쟤 때문이야"가 먼저 나온다
- 친구와의 다툼이 반복되고, 늘 자신이 억울한 쪽이라고 느낀다
- 사과를 시키면 더 격하게 거부한다
- 칭찬에는 기뻐하지만 작은 지적에는 무너지듯 반응한다
이것은 '못된 아이'의 신호가 아닙니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은 마음의 신호입니다.
아이 편에 서려다 보면, 부모도 함께 방어하게 됩니다
아이가 다른 아이와 부딪혀 지적을 받으면 부모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내 아이가 비난받는 순간은 곧 부모인 내가 평가받는 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애는 원래 예민해서 그래요", "그 아이가 먼저 자극한 거 아닌가요"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먼저 나옵니다.
그 마음은 아이를 지키고 싶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다만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반응을 보고 배웁니다. 곤란한 순간마다 탓이 바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실수 앞에서 같은 길을 고르기 쉽습니다. 부모를 탓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모 역시 지치고 억울한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해볼 수 있는 것
첫째, 감정이 먼저, 이야기는 나중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사과부터 요구하면 마음은 더 닫힙니다.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고, 진정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둘째, '사과'보다 '되돌리기'를 가르칩니다. "미안해"라는 말이 아직 어렵다면, 넘어진 친구에게 손을 내밀거나 부서진 것을 같이 고치는 행동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열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셋째, 부모가 먼저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까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어른도 실수하고, 인정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는 보면서 배웁니다.
넷째, '누구 잘못'이 아니라 '무슨 일'을 묻습니다. 판결을 내리기보다 함께 상황을 정리하면, 아이는 탓을 피할 필요 없이 자기 몫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상담은 아이와 부모를 함께 돕습니다
아이에게는 놀이와 미술 활동이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 보는 통로가 됩니다. 말로는 하지 못하던 억울함과 두려움이 그림과 놀이 속에서 드러나고, 그 마음을 다루는 연습을 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실수를 견디는 힘을 기릅니다.
부모상담에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함께 살핍니다. 아이 일 앞에서 유독 날카로워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그 밑에 어떤 불안과 억울함이 있는지 들여다보면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아이의 변화는 대개 부모가 숨 돌릴 자리를 찾을 때 함께 시작됩니다.
사과는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안전할 때 나오는 말입니다
실수해도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생길 때, 아이는 비로소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과는 다그쳐서 받아 내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나오는 말입니다.
아이의 눈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그리고 부모인 나도 함께 지쳐 있다면, 공감터가 아이와 부모 곁에서 함께 길을 찾겠습니다.
― 공감터 상담심리연구소 정선이 소장
